오늘 학교 어땠어?" "몰라." "왜 그래?" "됐어." 열한 살 딸과의 대화가 이렇게 짧아진 게 언제부터였을까요.
분명 같은 집에 살고, 매일 밥도 같이 먹는데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.
말을 걸면 귀찮다는 듯 피하고, 조금만 더 물어보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딸.
처음엔 제가 뭘 잘못한 건지 자꾸 되돌아봤어요.
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. "몰라"는 진짜 모른다는 게 아니고, "됐어"는 진짜 괜찮다는 게 아니었어요.
그 말 뒤에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이 잔뜩 쌓여 있었던 거였습니다.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엄마들, 저도 그랬어요. 같이 이야기 나눠봐요.

대화가 세 글자로 줄어든 날
어느 날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납니다.
"오늘 학교 어땠어?" 하면 "몰라"가 돌아오고, "밥은 먹었어?" 하면 "응" 한 글자.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"무슨 일 있어?" 하고
가까이 다가가면 "됐어"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.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어요.
황당하면서도, 뭔가 뜨끔했습니다.
내가 뭘 잘못한 건가. 오늘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는 애한테 너무 몰아붙인 건가. 아니면 그냥 원래 이런 건가. 생각이 꼬리를 물었어요. 근데 그것보다 더 솔직한 감정은 그냥 서운했습니다.
말도 못 붙이게 하는 이 아이가,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 다녀오자마자 현관에서부터 "엄마 있잖아, 오늘 급식에" 하고 쏟아내던 애였거든요.
그 수다가 그리웠어요.
"몰라"가 진짜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
한번은 참다 참다 진지하게 앉혔습니다.
"너 요즘 왜 그래. 엄마한테 말을 해야 알지." 딸은 잠깐 저를 보더니, 또 "몰라" 했어요.
그 순간 화가 확 올라왔습니다. 모르긴 뭘 몰라, 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.
목소리가 조금 높아졌고, 딸 눈에 뭔가 차오르는 게 보였어요. 눈물인지 짜증인지 모를 것들이.
그리고 "됐어" 하고 나가버렸습니다.
저는 한참을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.
허탈하기도 하고, 미안하기도 하고, 또 억울하기도 했습니다.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. 근데 자꾸 그 얼굴이 떠올랐어요. 차오르던 그 눈빛. 그 애도 뭔가 힘들었던 거 아닐까.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, 말이 안 되는 상태인 건 아닐까.
"몰라"는 진짜 모른다는 게 아니었습니다. 알고는 있는데,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.
그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.
딸의 "됐어"에 담겨 있던 것들
그 뒤로 저는 방식을 조금 바꿨어요.
물어보는 걸 줄였습니다. "오늘 어땠어"를 안 물어보는 게 처음엔 너무 어색했어요.
엄마가 관심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. 근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.
어느 날 제가 드라마 보면서 혼자 웃고 있었더니, 딸이 슬그머니 나와서 옆에 앉았어요. 아무 말 없이. 저도 아무 말 안 했습니다.
한 십 분 있다가 딸이 먼저 말했어요. "엄마, 나 요즘 친구 때문에 좀 힘들어."
딱 그 한 마디였는데, 저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.
이 말 하나 꺼내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린 건지. "됐어"라고 했던 그 날들이 사실은 이 말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던 거겠구나 싶었습니다.
저는 그날 많이 물어보지 않았어요. 그냥 "그랬구나, 많이 힘들었겠다" 하고 옆에 있었습니다.
기다리는 것도 대화라는 걸, 이제는 압니다
사춘기 아이와 사는 건 번역이 필요한 언어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.
"몰라"는 '아직 정리가 안 됐어'이고, "됐어"는 '더는 설명하기 싫어'이고, "왜?"는 '내 마음을 알아줘'인 경우가 많더라고요.
그걸 모르고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, 대화는 매번 벽에 부딪혀요.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.
비슷한 마음을 가진 엄마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.
아이가 말을 안 한다고 관계가 멀어진 게 아닙니다. 지금 그 애는 자기 안에 생겨나는 것들을 감당하느라 바쁜 거예요.
그 시간을 억지로 열려고 하면 더 꽉 닫히더라고요. 대신 그냥 옆에 있어 주세요. 리모컨 옆에, 식탁 옆에, 소파 끝에. 말 걸지 않아도 괜찮아요.
아이들은 준비가 되면 먼저 말을 꺼냅니다. 그리고 그때 엄마가 거기 있어야 해요.
기다리는 것도 대화라는 걸, 이제는 압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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