예전엔 TV 보다가도 와서 쏙 파고들던 아이였습니다.
자다가 깨면 제 팔을 꼭 잡고, 마트에서도 손을 먼저 내밀던 딸이었어요.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슬쩍 피하기 시작했습니다.
안으려고 하면 몸을 살짝 비틀고, 손을 잡으면 금방 빼고.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솔직히 많이 서운했어요.
내가 뭘 잘못한 건가, 이 아이가 나를 멀리하는 건가 싶어서 한동안 혼자 마음앓이를 했습니다.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요. 그건 거부가 아니라 성장이었다는 걸. 스킨십이 줄어든 사춘기 자녀 때문에 마음이 허전한 엄마들, 저도 그 마음 압니다.
같이 이야기 나눠봐요.
아이가 내 품을 피하기 시작한 날
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습니다.
어느 날 딸이 소파에 앉아 있길래 저도 옆에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쌌어요.
그랬더니 딸이 살짝 몸을 앞으로 빼더라고요.
티 안 나게, 아주 살짝. 근데 저는 느꼈습니다. 그 미묘한 움직임을. 모른 척하고 그냥 TV를 봤는데, 그날 이후로 자꾸 그 장면이 생각났어요.
그 전까지는 당연한 게 당연했거든요.
밥 먹다가 갑자기 와서 등에 기대고, 잠들기 전에 꼭 안아달라고 했고, 주말 아침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서 한참을 그렇게 붙어 있었습니다. 제가 먼저 안아주는 게 아니라, 딸이 먼저 오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.
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소중한 줄도 몰랐습니다.
근데 그게 없어지고 나서야, 얼마나 좋았던 건지 알게 됐어요.

마트에서 손을 내밀었더니 딸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였습니다.
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손 놓으면 다시 잡으러 오던 애였는데.
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렸지만, 걸으면서 괜히 코끝이 찡했어요. 이게 뭐라고. 손 하나 못 잡은 게 뭐라고. 근데 그 허전함이 생각보다 오래갔습니다.
집에 와서 딸이 방에 들어간 뒤에, 저는 한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어요.
이 아이가 저를 멀리하는 건가. 뭔가 서운한 일이 있는 건가. 아니면 그냥 이제 이런 건가. 어느 쪽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.
안아주려다 멈춘 손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
그 뒤로 저는 자꾸 눈치를 보게 됐습니다.
안고 싶은데, 피하면 어떡하지. 손 잡고 싶은데, 빼면 어떡하지.
그 생각이 먼저 드니까 자연스럽게 다가가지를 못했어요.
손을 뻗다가 멈추고, 어깨를 감싸다가 거두고.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저도 이상해졌습니다.
딸 앞에서 어색해지기 시작한 거예요. 11년 키운 내 딸 앞에서.
한번은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였어요.
예전이었으면 바로 안아줬을 겁니다. 근데 그날은 그냥 "힘들었어?" 하고 말로만 물어봤어요. 딸이 "아니요" 하고 방으로 들어갔고,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안아줄걸,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.
왜 못 안아줬을까요. 거부당할까 봐요.
그게 솔직한 이유였습니다. 내가 먼저 다가갔다가 딸이 피하면,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게 너무 싫었던 거예요.
그래서 제가 먼저 거리를 뒀습니다. 상처받지 않으려고. 근데 그러고 나면 더 허전했어요. 어쩌면 제가 딸보다 먼저 사이를 벌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.
어느 날 밤에 딸이 자는 얼굴을 보러 방에 들어갔습니다.
불 꺼진 방에서 딸이 웅크리고 자고 있었는데, 저도 모르게 이불을 여며주다가 등을 가만히 두드렸어요.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, 눈치 볼 것도 없으니까. 딸은 자고 있었지만 저는 한참 그렇게 있었습니다.
그게 그 시절 제가 스킨십을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.
피하는 게 아니라, 자라는 중이었습니다
그즈음에 친한 친구한테 이 얘기를 꺼냈어요.
걔네 딸이 저희 딸보다 두 살 많거든요. 그 친구가 제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면서 "나도 그랬어" 했습니다.
자기도 딸이 안기지 않을 때 너무 서운해서, 억지로 잡으려다가 더 크게 밀려난 적도 있다고.
근데 지금은 딸이 가끔 먼저 안겨온다고 했어요. 고등학생이 된 지금.
그 말이 좀 위로가 됐습니다.
그리고 나서 생각해 봤어요
딸이 피한다고 느꼈는데, 딸 입장에선 어땠을까. 그 나이에 몸이 달라지고 있고, 자기 공간이 생기고, 예전처럼 엄마한테 기대는 게 왠지 어른스럽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잖아요. 안기고 싶어도 괜히 쑥스럽고,
손 잡고 싶어도 너무 어린애 같은 것 같고. 딸도 그 사이에서 어정쩡했던 거 아닐까요.
피하는 게 아니라, 자라는 중이었던 거예요.
그걸 알고 나니까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. 딸이 몸을 살짝 빼는 게 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, 자기 몸과 감각을 조율하는 과정이었다는 것. 그리고 그 와중에도 밥 먹을 때 제 옆자리에 앉고,
자기 전에 "엄마 잘 자요" 하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연결되고 싶다는 신호였다는 것.
스킨십의 언어가 달라진 거지, 마음이 멀어진 게 아니었습니다.
안아주는 것 말고도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
지금 비슷한 마음을 가진 엄마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.
서운한 마음, 정말 당연합니다. 그 품에서 자라던 아이가 슬쩍 피할 때, 그게 아프지 않은 엄마는 없을 거예요.
근데 그 서운함을 아이한테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면, 아이는 엄마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돼버립니다.
자라느라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 아이한테, 엄마 감정까지 감당하게 하는 건 좀 무거운 짐일 수 있어요.
그러니까 서운한 마음은 간직하되, 아이한테 다가가는 방법을 조금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.
억지로 안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. 옆에 앉아서 같은 걸 보는 것, 좋아하는 간식을 말없이 갖다 놓는 것, 지나가다 머리를 한 번 쓱 쓰다듬는 것. 짧고 가볍지만, 그게 쌓입니다. 아이도 느끼거든요. 엄마가 자기 곁에 있다는 걸.
그리고 기억해 주세요. 지금 안기지 않는 이 아이가,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안겨옵니다.
별 이유 없이, 그냥. 어른이 다 돼서도 그런 날이 옵니다. 그날을 위해서 지금 옆에 계속 있어 주세요.
밀어내지 않고, 기다려주는 엄마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으니까요.
안아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거, 이 시간을 지나면서 저도 배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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